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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 박완서 산문집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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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 박완서 산문집

열림원

박완서 지음

2007-01-28

대출가능 (보유:1, 대출:0)

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돌이켜보니 자연이 한 일은 다 옳았다”

박완서, 5년 만의 신작 산문집!




칠십 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그 물소리는 마치 모든 건 다 지나간다,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돼 있다,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그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깊은 위안과 평화를 준다.

―본문에서



박완서, 어느덧 일흔일곱…



“요즈음 나이까지 건재하다는 것도 눈치 보이는 일”이 되었을 만큼,

“알량한 명예욕을 버리지 못하고 괴발개발 되지 않은 글을 쓰고”(263쪽) 싶어할까봐 밤낮으로 경계하여야 할 만큼,

한없이 낮고 두려운 나이.

어느덧 일흔일곱에 이른 소설가 박완서의 산문집 『호미』가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두부』 이후 5년 만에 독자들에게 내놓는 신작 산문집이다.

70여 년의 세월 동안 박완서가 겪은 “애증과 애환, 허방과 나락, 작은 행운과 기적들…”이 고스란히 이번 산문집에 담겨 있다. 애증과 나락마저도 박완서의 깊은 성찰을 통해, 묵직한 울림이 되어 전해져온다.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철살인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



박완서의 경건한 고백처럼,『호미』는 작가 주변의 자연과 사람들을 한없는 인내의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건져올린 경탄과 기쁨이자 애정과 감사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22쪽), “땅은 내가 심거나 씨 뿌리는 것한테만 생명력을 주는 게 아니다. 바람에 날아온 온갖 잡풀의 씨앗, 제가 품고 있던 미세한 실뿌리까지도 살려내려 든다”(55쪽),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게 아닐까”, “상상력은 남에 대한 배려, 존중, 친절, 겸손 등 우리가 남에게 바라는 심성의 원천이다. 그리하여 좋은 상상력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한다”(112쪽).

한결같이 박완서만이 들려줄 수 있는 축복의 문장들이다.



들판의 모든 것들,

시방 죽어 있지만 곧 살아날 것들,

아직 살아 있지만 곧 죽을 것들,

사소한 것들 속에 깃든 계절의 엄혹한 순환…




구리시 아차산 자락에 살고 있는 박완서의 즐거움은, 꽃과 나무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그루터기만 남겨두고 싹둑 베어버렸으나 죽지 않고 새싹을 토해낸 목련나무에 대고는 “나를 용서해줘서 고맙고, 이 엄동설한에 찬란한 봄을 꿈꾸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을 건다. 일년초 씨를 뿌릴 때는 “한숨 자면서 땅기운 듬뿍 받고 깨어날 때 다시 만나자고 말을 건다. 일년초가 비를 맞아 쓰러져 있으면 “바로 서 있으라고 야단”(15쪽)도 친다. 스스로 원경으로 물러서는 박완서의 마음밭은, 바로 그러한 수다와 속삭임으로 일구어낸 꽃들과 나무들 천지다. 오늘도 박완서는 새벽의 조용한 마음밭으로 나가 꽃과 나무들의 출석부를 부른다. 복수초, 상사초, 민들레, 제비꽃, 할미꽃, 매화, 살구, 자두, 앵두, 조팝나무……

모든 자연의 시작은 종말을 예고하는 법.

그러나 박완서는 종말이 새로운 시작을 불러오는 순환의 법칙을 일깨워준다. “작년에 그 씨를 받을 때는 씨가 종말이더니 금년에 그것들을 뿌릴 때가 되니 종말이 시작이 되었다. 그 작고 가벼운 것들 속에 시작과 종말이 함께 있다는 그 완전성과 영원성이 가슴 짠하게 경이롭다.”(45쪽)

자연의 엄숙한 순환인 시작과 종말 앞에서, 박완서는 겸허히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칠십 고개를 넘고 나서는 오늘 밤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아도 여한이 없도록 그저 오늘 하루를 미련 없이 살자고 다짐해왔는데 그게 아닌가. 내년 봄의 기쁨을 꿈꾸다니…….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는 기능이 남아 있는 한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이로구나”(35쪽)



오늘날의 박완서를 지탱해주는

팔 할의 아름다운 영혼들




박완서는 이번 산문집에서 유독 맑고 아름다웠던 영혼들을 가슴 찡하게 추억한다. 세상에 대해 더없이 너그러웠던 그녀 주변의, 그녀보다 앞서 세상을 살다갔거나 여전히 우인(友人)으로 존재하는 어른들의 삶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하는 상상력의 힘을 우리에게 불어넣어준다.

박완서의 시어머니 되시는 분은 “종교도 없었고 학교도 안 다녔지만 인간을 아끼고 생명을 존중하는 경건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신 분”(165쪽)이었으며, 철저히 유교적이었던 할아버지는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사람의 근본으로 삼으면서도, 대처에 나가 있는 손자들이 방학해서 내려와 있는 동안 차례도 지내고 음식 장만을 하기 위해 양력설을 쇠도록 한 진보적인 분이셨다. “네가 싫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잔칫집이나 친척집에 손님으로 가서 윗자리에 앉지 마라. 일꾼이 게으르게 굴었다고 품삯 깎지 마라”(168쪽) 등등 그분의 훈계와 뜻을 박완서는 오늘도 잊지 않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보배로운 이 시대의 기인”인 역사학자 이이화, “복 많은 사람” 김수근, “돼먹지 않은 걸 꾸짖고 혐오하실 때는 망설임이 없으”시던 시조시인 김상옥, “이름만 봐도 가슴이 따뜻해지곤” 하는 소설가 이문구 선생에 대한 박완서의 존경과 그리움이 주는 깨달음은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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